시어머니에 간 떼준 며느리 뒷얘기 |
[조선일보] 안녕하세요, 사회부 김봉기 기자입니다. 이메일 클럽을 통해서 오랜만에 인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은 지난 20일자 신문에 보도된 “시어머니에 간 떼줘… 기증사유서에 ‘그분을 사랑합니다’”’라는 기사를 기억하시나요. 결혼 3년차인 이효진(29)씨가 지난 16일 간이식 수술을 통해 4년 동안 간경화로 투병하는 시어머니 이성숙(52)씨에게 자신의 간 60%를 떼어드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기사가 나간 지 이미 5일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이 기사를 보고 소감을 보내주는 독자분들도 계시고, 후원금을 보내주고 싶다는 이메일도 오고 있습니다. 많은 분이 이 기사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서, 짧은 기사에서 미처 다 쓰지 못한 취재 내용들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효진씨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된 것은 효진씨가 수술을 받은 삼성서울병원 홍보실 관계자를 통해서였습니다. 그 관계자는 “우리 병원에서 그 동안 자녀들이 부모에게 간 기증을 해준 적은 있지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간 기증을 해준 것은 처음”이라고 말하더군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며느리가 있으면, 당연히 아들이 있을텐데, 아들은 뭐하고 며느리가 장기를 기증했지?’라고 말이죠. 다음날 병원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이미 병실에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기자들이 5~6명 정도 와 있었습니다. 언론에 보도가 될만한 ‘기사거리’라고 생각한 병원 관계자가 이미 저말고도 거의 모든 언론사에 이 내용을 알렸기 때문이었죠. 제가 처음 본 효진씨에 대한 느낌은 ‘참 맑다. 깨끗하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를 해보니 예쁜 얼굴만큼이나 마음씨도 곱다는 것을 곧 느낄 수 있었죠. 하지만 효진씨는 많은 기자들이 찾아왔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부담스러워 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인터뷰 도중에 “이렇게 알리려고 수술한 게 아닌데…”라며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처음엔 겁도 났어요, 친청 어머니도 만류하구요. 하지만 시어머니도 제가 친청어머니 처럼 사랑하는 제 어머니신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요.” 제가 효진씨에게 수술을 결심하게 된 동기를 물었을 때 들은 대답이었습니다. 가정학습지 방문교사인 효진씨는 지난 2002년 4월 동갑내기인 남자친구 구본식(29)씨와 결혼을 했습니다. 남편은 경기도 안산에 있는 남부시장에서 야채도매상을 하고 있구요, 효진씨는 결혼 후 경기도 시흥에서 시부모님과, 미혼인 시동생과 함께 줄곧 살아왔습니다. 시어머니는 아침 일찍 출근하는 며느리를 위해 매일 손수 식사를 차려주셨고, 빨래 등 며느리가 해야 할 가정살림을 도맡아 챙겨주셨다고 하네요. 효진씨도 빠듯한 월급을 쪼개 시어머니를 모시고 단둘이 영화관에 모셔가곤 했고, 시장에 갈 때면 ‘고부(姑婦) 간이 아니라 모녀지간이냐’는 소리를 더 잘 들었다고 합니다. 효진씨는 “당시만 하더라도 시어머니께서 계속 약물·통원 치료를 받으셨기 때문에 상태가 악화될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하더군요. 하지만 시어머니 병세는 조금씩 더 악화됐고, 아파트 전기기사 일을 하시던 시아버지께서는 일도 그만두시고 효진씨의 남편과 함께 야채 도매상을 틈틈이 하시면서 시어머니를 간병하셨다고 하네요. 하지만 결국 작년 말 시어머니의 증세가 간경화 말기까지 악화됐습니다. 의료진은 간이식 수술 이외에는 다른 치료방법이 없는 진단을 내렸죠. 당시 남편을 비롯한 3형제가 모두 간기증 가능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조직 검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어머니가 간염보균자셨기 때문에 3형제가 모두 간염보균자로 판명이 나 “간 기증이 불가능하다”는 진단결과가 나왔습니다. 시아버지는 혈액형이 시어머니와 일치하지 않았고, 효진씨의 손위 동서는 둘째 아이를 출산한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간 기증은 생각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때 효진씨가 나서게 된 것입니다. 올 1월 31일 효진씨는 시부모님과 친정 부모님 몰래, 병원을 찾아가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효진씨는 “전에 이모님이 ‘간이식을 해주겠다’고 나서 다들 기뻐했는데, 조직검사에서 ‘부적격’ 판정이 나와 가족들이 크게 실망한 적이 있었다”며 “혹시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서 몰래 검사를 받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검사결과는 ‘적합’으로 나왔고, 효진씨는 남편와 상의한 뒤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이 결정에 친정 부모님은 물론, 시어머니도 처음에 반대를 하셨습니다. 시어머니는 “앞으로 아이도 낳아야 하고 직장도 다녀야 하는데, 수술 때문에 화를 입을 수 있는데… 절대로 안된다”며 거절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효진씨의 결심은 확고했습니다. 친어머니만큼 소중한 시어머니가 아파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었기에 회사에 휴가계를 제출하고 수술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또 효진씨는 남편과 함께 경북 상주에 있는 친정집에 내려가 수술전 친정 부모님들을 설득시키기도 했습니다. 결국 온 가족의 도움 속에 지난 16일 오전 7시 시어머니와 함께 수술대에 오른 효진씨는 장작 16시간동안 수술을 받고 자신의 간 60%에 달하는 584g을 시어머니에게 드렸습니다. 마침 제가 효진씨를 찾아갔던 날은 수술을 마치고 중환자실에 있던 시어머니와 효진씨가 수술후 처음으로 만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수술 후 3일만에 처음 만나는 것이었죠. 중환자실 면회였기 때문에 입에는 마스크를 쓴 상태로 두 사람은 만났습니다. 마스크 때문에 이 두 사람의 대화를 다 들을 순 없지만, 시어머니가 효진씨를 보자마자 하신 말은 확실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첫마디가 바로 ‘사랑한다’였습니다. 그 순간 저는 효진씨가 수술 전에 작성한 ‘장기 이식대상자 선정사유서’가 생각났습니다. 이날 병원에 가자마자 취재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봤었는데, ‘기증사유’란에는 효진씨가 자필로 쓴 “그분을 사랑합니다”라는 글씨가 있었습니다. 이 기사가 나간 날, 제 기사 제목을 달아주신 편집부 선배께서 농담처럼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아침에 신문을 보고 시어머니로부터 비교를 당하거나 ‘쪼임’을 당한 며느리들이 꽤 있을 거같은데…”라고 말이죠. 혹시 이 기사가 나간 뒤에 ‘이런 며느리도 있는데, 넌 왜…’라며 시어머니께 비교를 당하신 며느리들이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이 시어머니는 이렇게 며느리에게 자상하다는데…’라는 반대의 경우를 겪은 분들도 계시겠죠. 만약 그러셨다면, 간을 서로 나눈 이 고부를 생각하시면서 한 발만 뒤로 물러서면 어떨까요. (김봉기 드림 knight@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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