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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결사들...

Opinion

by liaison 2005. 7. 26.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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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구에서 나오는 영화나 대중 소설들 가운데는 비밀결사를 소재로 한 것들이 늘고 있는 듯하다. 국제적으로 밀리언셀러가 된 미국의 소설가 댄 브라운의 작품 ‘다빈치 코드’에서는 중세에 조직된 ‘템플기사단’과 ‘시온의 수도회’ 등의 비밀결사가 예수의 혈통을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 댄 브라운의 작품 가운데 다빈치 코드에 이어 한국에 소개된 ‘천사와 악마’에서는 역시 중세에 유럽에서 조직된 것으로 전해지는 일루미너티, 프리메이슨 등의 비밀결사가 흥미를 북돋운다. 최근에 소개된 스페인의 작가 훌리아 나바로의 작품 ‘성수의 결사단’에서도 템플기사단의 활약이 나온다. 이탈리아 작가 움베르토 에코가 쓴 ‘푸코의 진자’도 템플기사단을 소재로 한 것이다.

영화에서도 비밀결사는 단골 소재다. 최근 개봉했던 미국 영화 ‘내셔널 트레저’에서 주인공은 프리메이슨이 비밀리에 숨겨둔 어마어마한 양의 보물을 찾아낸다. 영화 ‘툼 레이더’에서 여주인공은 일루미너티라는 비밀조직이 우주를 지배하려는 음모에 대항해 싸운다. 한국에서도 1996년에 나온 구효서의 소설 ‘비밀의 문’에서는 세상을 파괴하려는 밀교집단이 소재였다.

1118년 결성, 소설 ‘다빈치 코드’에 등장 ,예루살렘 왕국보호 임무, 처참한 최후
◇템플기사단

서구에서 전해 내려오는 비밀결사들 가운데 영화나 문학에서 가장 자주 이용되는 소재는 템플기사단이다. 템플기사단은 역사적으로 분명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템플기사단은 십자군 원정 직후인 1118년 결성됐다. 십자군이 세운 예루살렘왕국의 보호와 이곳의 성지를 찾는 순례자를 보호하는 것이 목표였다.

템플기사단은 유럽의 군주들로부터 여러가지 특권을 누렸다. 순례자들로부터도 헌금을 받았으며 특히 유럽과 중동 지역에 걸친 네트워크를 이용해 상당한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 이들의 조직이 거대해지고 영향력이 강화되자 프랑스에서 공평왕으로 통하는 국왕 필립 4세는 1307년 10월 13일 금요일에 템플기사단원들을 체포하고 고문을 통해 이단이거나 동성애자라는 등의 자백을 끌어냈다. 프랑스 국왕은 이러한 방법을 통해 왕국 내에 있는 템플기사단을 해체시키고 재산을 빼앗았다. 템플기사단의 지도자인 자크 드 몰레는 화형당했다.

템플기사단의 실체는 이처럼 역사 속에서는 참담한 말로를 맞았지만 전설 속에서는 화려하게 부활하기 시작했다.

먼저 자크 드 몰레는 화형당하기 직전 “내가 죽고 1년 이내에 국왕과 교황이 해를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템플기사단의 탄압에 협조한 로마 가톨릭 교황 클레멘스 5세는 몰레 사망 1개월 만에, 국왕 필립 4세는 7개월 만에 사망했다.

 

또 프랑스 대혁명 이후인 1793년 1월 루이 16세가 처형될 때 단두대 위에서 누군가가 “자크 드 몰레여, 복수는 끝났습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프랑스 대혁명도 템플기사단이 600년을 비밀조직으로 맥을 이어오면서 꾸민 음모의 결과라는 해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러한 전설이 나올 때쯤 되면 템플기사단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역사를 움직이는 비밀결사라는 자리를 차지한다.

600년 전 억울하게 화형당한 템플기사단의 영혼이 민중의 마음속에서 부활해 국왕과 교황에 대한 복수를 이루었다면, 프랑스 대혁명 때에 템플기사단은 처형된 국왕을 불쌍히 여기는 민중의 마음속에서 악마를 숭배하는 비밀결사로 미움을 받는다. 템플기사단원들이 동성애자이거나 악마를 숭배하거나 이단이라는 등의 내용은 이미 몰레가 화형당했을 때 고문에 의해 강요된 자백에 나온다.

그런가 하면 템플기사단은 예수의 성배를 보호하는 성스러운 비밀결사로 전해진다. 이는 템플기사단의 애초의 임무가 기독교 성지와 순례자를 보호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역사적인 설립취지에 걸맞은 전설인 셈이다. 보통 템플기사단이 지키는 성배는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 사용하던 잔을 의미한다. 1989년에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 ‘인디아나존스와 마지막 십자군’은 이러한 전설을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소설 ‘다빈치 코드’에서 성배는 예수의 혈통으로 가정했다.

중세 석공들의 비밀공제조합, 노하우 전수서 조직으로 발전
◇프리메이슨

템플기사단의 뒤를 이어 역사를 움직이는 비밀조직으로 자주 운위되는 비밀 조직이 프리메이슨이다. 프리메이슨은 석공(石工)들의 비밀공제조합이라는 의미이다. 프리메이슨은 석조건축에 대한 노하우가 석공들 사이에서 철저하게 비밀리에 전해지던 중세에 처음 조직된 것으로 추정된다. 석공들은 큰 공사가 벌어지면 로지(Lodge)에 머물렀다. 이곳에서는 석공술을 엿보거나 전수받을 수 있었을 만큼 가입절차가 까다로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로지에 가입할 때에 필요한 독특한 의식과 절차 등이 발전하게 된다.

그런데 프리메이슨 조직은 16~17세기에 들어서면서 단순히 석공들만의 조직이 아닌 일반 지식인들의 비밀조직으로도 발전하게 됐다. 특히 영국에서는 귀족들이 프리메이슨을 구성했으며 왕실의 몇몇 왕자들이 최고지도자인 그랜드 마스터에 오르기도 했다는 것이다. 상류사회 인물들이나 지식인들이 프리메이슨과 같은 비밀결사를 구성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국 작가 조엘 레비는 ‘비밀과 음모의 세계사’라는 책에서 남성 전용 클럽의 회원이 누리는 것과 같은 소속감, 일상적으로 접할 수 없는 종교적인 믿음을 탐구할 수 있는 기회, 비밀결사에 소속돼 있다는 긴박감, 그리고 인맥을 형성하는 기회를 누리는 점 등을 꼽았다.

영화 ‘내셔널 트레저’는 미국 독립선언 당시 프리메이슨이 숨겨놓았다는 보물을 찾는 이야기이다. 물론 근거 없는 이야기이다. 미국에 프리메이슨이 창립된 것은 1730년대로 추정된다. 당시 영국의 식민지이던 미국에서는 지식인들 사이에 비밀결사인 프리메이슨이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56명 가운데 50명이 프리메이슨 단원이라는 설도 있고, 단 8명만이 프리메이슨 단원이라는 설도 있다. 다만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벤저민 프랭클린은 프리메이슨의 한 책임자로 활동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대통령 가운데에는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을 비롯, 제임스 먼로, 앤드루 잭슨, 에이브러햄 링컨, 시어도어 루스벨트, 프랭클린 루스벨트, 해리 트루먼, 린든 존슨, 제럴드 포드 등이 프리메이슨 단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모두 다 설이다. 포드 대통령 재직시는 럼스펠드 국방장관, 체니 비서실장 등이 모두 프리메이슨이었다는 설이 나돌았다.

 

이쯤되면 프리메이슨이 세계를 움직인다는 음모론이 나오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또 프리메이슨은 신흥 산업가나 근대적인 과학을 신봉하는 지식인들의 비밀결사이다. 평등과 종교적인 관용을 추구하므로 전통적인 기독교에는 일정하게 비판적인 자세를 취한다는 인상을 주게 마련이다. 대중들 사이에서 프리메이슨이 악마를 숭배하는 밀교집단이라는 미신이 돌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조엘 레비는 현재 영국에는 60만명, 미국에는 350만명의 프리메이슨 단원이 활동 중인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프리메이슨은 지역별로 조직되기 때문에 중앙집권적인 질서를 가지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독일 자유사상가들의 모임, 현재도 명맥 유지 암약설도
◇일루미너티

일루미너티는 대체로 독일 바이에른 지방에서 1776년 결성된 바이에른 일루미너티를 뜻한다. 이는 공화주의를 지지하는 자유사상가들이 종교법학자 아담 바이스하우프트를 중심으로 만든 프리메이슨과 같은 형태의 비밀결사이다. 일루미너티는 라틴어로 ‘깨어난 사람들’이라는 의미이다. 이들은 유럽 전역에 지부를 설치하는 등 한때 활발한 활동을 벌였지만 회원은 기껏해야 2000명 정도인 작은 조직이었다. 일루미너티가 활동을 벌일 당시 바이에른 지방은 로마 가톨릭이 대세를 차지하는 대단히 보수적인 공국이었다. 당연한 결과겠지만 바이에른 공국은 1784년 과격한 공화주의나 자유주의를 전파하는 일루미너티나 프리메이슨 등의 비밀결사를 모두 불법화했다. 하지만 일루미너티가 오늘도 비밀결사로서 명맥을 이어내려 오고 있다는 설도 나돌고 있다.

영화 ‘툼레이더’에서는 일루미너티를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천년 이상 존속해온 비밀조직으로 그린다. 그런데 댄 브라운은 소설 ‘천사와 악마’에서 일루미너티가 1500년경 중세 이탈리아에서 갈릴레이의 주도로 로마 가톨릭에 저항하기 위해 설립됐다고 한다. 댄 브라운은 일루미너티 회원들이 교회의 탄압을 피해 프리메이슨에 터를 잡았다고 이야기를 엮는다. 어차피 다 영화나 소설이다. 실제 근거가 있는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재미만 있으면 된다.

이처럼 비밀결사들이 자주 영화나 소설의 소재가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사람들에게 신비감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비밀결사들이 세상을 움직인다는 생각은 곧잘 음모론으로도 이어진다. 특히 상식으로 쉽게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정세가 급변할 경우에는 어김없이 비밀결사들의 음모론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역사에서는 사라졌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남은 비밀결사들은 소설가에게 독자를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끌어들일 수 있는 재미있는 소재가 된다. 하지만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주간조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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