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법 첫째
그대 향한 내 기대 높으면 높을수록 그 기대보다 더 큰 돌덩이 매달아놓습니다.
부질없는 내 기대 높이가 그대보다 높아서는 아니 되겠기 내 기대 높이가 자라는 쪽으로 커다란 돌덩이 매달아놓습니다.
그대를 기대와 바꾸지 않기 위해서 기대 따라 행여 그대 잃지 않기 위해서 내 외롬 짓무른 밤일수록 제 설움 넘치는 밤일수록 크고 무거운 돌덩이 하나 가슴 한복판에 매달아놓습니다.
- <뱀사골에서 쓴 편지>, 고정희, 미래사
고정희씨의 시는 흔히들 슬픔의 시라고 합니다. 시를 쓴다는 것이 제 몸에 생채기를 내는 과정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그녀의 시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말하는 슬픔의 무게는 어깨에 남아있는 잔여분의 힘을 앗아갈 정도로 무겁습니다.
간밤, 캐서린 햅번의 사랑이야기를 들은 후 갑자기 고정희씨가 생각났습니다. 가정이 있는 남자를 평생 동안 사랑하면서도 그가 아꼈던 가정을 지켜주고자 했던 햅번. 그의 임종을 옆에서 지켜본 후에도 가족에게 연락한 후 쓸쓸히 돌아서야만 했던 그녀의 모습을 보는 순간 고정희씨의 슬픔이 생각났던 것은 아마도 지금 계절이 가을이기 때문이겠죠.
사랑을 합니다. 그것이 여태 겪은 종류의 사랑이건,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사랑이건 나는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살아오면서 쉽게 사랑한다는 말을 내뱉은 적도 없고, 그렇다고 자발적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고백한 적도 없습니다. 어쩌면 그녀처럼 그리움에, 안타까움에 항상 뒷걸음질을 치면서 감정을 꾹꾹 누르는 법을 터득한 탓일 겁니다. 한동안 감당하기 힘들만큼 넘치는 사랑을 꿈꾸었으나 이제는 편안한 사랑을 하는 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그리고 배우고 있습니다.
다만, 그리움의 끝에 돌덩이를 메어다는 버릇만큼은 고치기 힘들 듯 합니다. 사랑하는 이에게는 파란색 펜으로 글을 써 편지를 부친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절대 파란색 펜은 이용하지 않는 이상한 오기만큼은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변하지 않을 테니까요.
절대, 가지 않을 테지만 고정희씨가 생의 여분을 기증한 지리산에 오르고 싶은 감정이 뭉클 솟아납니다. 그녀가 그립습니다.
겨울비의 사진솜씨 (10) | 2003.12.08 |
---|---|
웃으며 영어 한마디~~ (0) | 2003.12.03 |
[스크랩] 꼬마 아니말의 7가지 이야기中 (6) | 2003.11.18 |
오래 전 사진중에 메이님 과 정신바짝님 (17) | 2003.11.11 |
[스크랩] 시간... (0) | 2003.1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