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군! 나는 시 몇편 잘 썼다고 시인을 맨들어 줄 수는 없네. 자네 알제? 보게. 시 몇편 좋다고 시인으로 추천을 해준 사람이 기백 은 되지러 아마, 그중 아직도 시 쓰는 사람은 다섯 손가락도 못 꼽아. 문학을 전공 하고 시인 된 시인들도 힘들면 언제 시를 썼나 싶게 시를 버리는데..' '지란지교(芝蘭之交)를 꿈꾸며'(1986)의 시인 유안진(62.서울대 아동학 교수)씨 가 에세이집 「바람편지」(중앙 M&B)에서 자신을 문단에 등단시켜준 고(故) 박목월 시인과의 인연을 회고했다. 박목월 시인이 시인의 추천에 무척 엄격했음을 들려주는 일화가 흥미롭다.
'유군은 국문과 영문과도 아닌데, 시 몇편 좋다고 시인으로 추천했다가 사는 게 힘들어지고 바빠서 시 안쓰면 추천한 나는 뭐가 되노?' 시인은 박목월 시인의 '인색 함'에 시인이 되기를 포기하고, '절대로 날 추천해주실 분이 아니라는 생각이었으니 까, 그후 가망없는 나는 다시는 습작원고를 보여드리지 않기로 마음먹고 ..아주 잊 어버렸는데, 책방에서 「현대문학」을 보고 추천이 된 것을 알았다'고 떠올렸다.
시인은 1965년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했다. '선생님은 훗날 그가 어떤 시 를 어떻게 얼마나 오래 쓰며 죽기까지 시인으로 살 것인지를 짚어보고 헤아려보신 다음에야 추천해주셨다. 어떤 시인은 추천받는데만 11년이 걸렸고 어떤 제자는 선생 님 댁 대문을 발로 박차고 울부짖으면서 다시는 이 문간을 넘어서지 않겠다고 소리 치고 나왔고 어떤 이는 박목월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소름이 끼쳤다' 시인은 '근년들어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면서 다시 선생님의 시를 통독하게 되었 는데, 그야말로 지금 내가 실험해보고 싶은 '명사들로만 쓴 시' '동사들로만 쓴 시' '형용사나 부사만으로 쓴 시' 등을 시도하면서, 전에는 무심히 읽고 지나쳤던 '불국 사' '청노루' '나그네' 등에서 선생님은 이미 오래전 청년기에 시도하셨음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첫인사를 드린 날 화신백화점 앞의 설렁탕 집에서 선생님 앞에 있는 소금 그릇 을 끌어오지 못하고 맨설렁탕을 먹는 나를 보시고 '저리 숙맥 같으니. 시는 잘 쓰겠 구나'라고 생각하셨다는 말씀을 지금도 자주 들려주실 수 있었으면 어리광도 부리듯 깔깔댈 수 있을텐데'라며 그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시인은 몇년전 박목월 시인을 문단에 추천해준 정지용 시인의 문학적 업적을 기 리는 문학상을 탔는데 '그때도 살아계신 선생님 앞에서 선생님의 은사이신 정지용문 학상을 받았더라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라며 아쉬워했다.
서울=연합뉴스 인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