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무시당해야 할 인생은 없다' | ||||||||||||||||||||||||||||||
'팀 유니폼'을 입고 버스에 올랐던 나머지 구단들은 당연히 '우승'을 외쳤지만 삼미의 목표는 특이했다. 살벌한 프로 시대에 삼미가 외친 목표는 다름 아닌 '야구를 통한 자기 수양'이었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이 일화는 소설 속 얘기가 아닌 '사실'이다. 그 후 삼미는 처절한 대가를 치르며 보란 듯 그들의 '목표'를 이루는데…. 그저 앞만 보고 쉴 새 없이 달리기도 숨가쁜 세상. '일등'도 아닌 '만년 꼴찌'였던 그 이름도 찬란한 전설의 '삼미 슈퍼스타즈'를 부활시킨 사람이 있다. 프로 야구팀 SK와이번스와 함께 인천 야구의 붐을 일으킨 화제의 작가 박민규(35)씨가 그 주인공이다.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박민규씨의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인천 야구팬들 사이에 '필독서'로 통하며 인천 지역의 서점에선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있다. 스산한 겨울 밤. 이불 속에 파묻혀 키득거리며 보는 만화책의 재미를 아는가? 신김치에 말아먹는 라면마저 있다면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부럽지 않다. 그랬다. 박민규씨의 소설을 보는 내내 필자는 터지는 폭소와 찔끔거리는 눈물을 참느라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몰랐다. 다 보고 난 후 필자는 나름의 감동을 달래며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을 끓여 먹었고, 과연 소설을 읽은 건지 글자가 조금 많은 만화책을 읽은 건지 헷갈리며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능청스러움의 성석제 혹은 대책 없는 아저씨 현태준, 그리고 또 누가 닮았더라. 작가에 대한 궁금증은 날이 갈수록 더해갔다. 작가에 대해 전해들은 정보란 그저 '인터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뿐.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그는 인터뷰를 꺼려했고 필자는 '책을 보고 세 번 울었다'는 삼미 전 구원 투수 감사용씨의 말을 전하며 그의 허락을 얻어냈다. '인천 시민들 마음 속 삼미는 SK' 검정 가죽 바지와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 홍대앞 거리는 그와 닮아 있었다. 홍대 앞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소설 속 신랄한 입담과는 달리 낯을 가리는 수줍은 '록커' 같았다. 박씨는 서로 익숙해질 동안 조심스레 입을 가리며 말하는 등 소설 속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의 목소리는 작았고 말투는 느리고 차분했다. 프로야구 원년인 해 박씨는 OB(현 두산) 어린이 회원에 가입했다. 유년시절 그가 제일 좋아하는 선수는 OB의 불사조 박철순 투수였다. 그는 OB의 어린이 회원이기도 했지만 박철순 투수를 혹사시키는 구단이 미웠다고 회상한다. '어쩌면 저렇게 사람을 혹사시킬 수 있을까. 다른 팀도 아닌 자기 팀의 선수를 저렇게까지 만들 수 있을까 싶었어요. 저에겐 박철순 선수가 우상이었어요. 제 영웅을 아프게 만들고 나중엔 이혼까지 하게 만든 구단이 참 미웠죠.' 유년 시절 삼미는 그에게 특별한 기억을 주지 못했다. 막연히 항상 꼴찌 하는 팀으로, 그가 응원하는 OB와는 라이벌이 안 되는 팀에 불과했다. 그의 유년 기억에 의하면 대부분의 야구팬들이 삼미를 싫어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고 전한다. 박철순을 좋아했던 그 소년은 98년 IMF 위기를 맞는 어른으로 성장한다. 소년은 주변에 실직하는 수많은 동료들을 지켜보며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사표를 내고 삼천포에서 글쓰기를 시작, 실직자들에게 조언을 받으며 탄생한 소설이 바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다. '처음엔 '진짜 인생은 삼천포에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그러다 항상 패배를 하는 삼미가 떠올라 소재로 삼았던 거예요. 가끔 책 한 권을 쓰면 무언가 다 아는 사람처럼 말하는 작가들이 많은데 전 야구를 많이 알거나 좋아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에요. 정말 야구를 많이 알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죠. 항상 느끼는 거지만 왜 우리 모두가 프로처럼 살아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어요. 왜인지는 모르는데 꼭 프로같이 살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정신없이 살아야 하는 세상에 의구심이 들었죠.' 그가 정의하는 '프로'란 '돈'이다. 박씨는 '만약 제가 몇 억을 준다고 하면 제 똥을 먹을 사람도 나올 걸요'라며 현대를 '돈이 최고'인 '프로의 시대'라 표했다. 특별히 삼미와 인연이 없었던 그는 자료 조사를 하기 위해 삼미 어린이 회원을 만나는 등 인천과도 자연스레 인연을 맺게 됐다. '인천을 위해 투자한 현대 나름의 업적은 인정하더라도 분명 잘못은 했어요. 인천 사람들이 현대를 얼마나 좋아했는데 떠나지 않겠다고 말해 놓고선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연고지를 옮기면 안 되죠.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사과하면 될 것을. 현대는 지금껏 아무런 공식적 표명이 없잖아요. 겉으론 현대가 삼미를 인수했는지 몰라도 인천 시민들 마음속에 살아 있는 삼미를 인수한 건 현대가 아닌 SK죠.' 소설을 쓰는 동안 삼미를 사랑 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그는 인천 시민과 함께 SK를 응원했다. 박씨는 '올 시즌 SK가 한국 시리즈까지 올라간 그 과정만으로도 이미 우승한 것'이라며 SK를 멋있는 팀이라 정의했다. 이어 그는 문학상을 받은 것보다도 SK경기에 초청돼 시구를 한 것이 작가로서 더 뜻깊었다며 연신 기뻐했다. '꼴찌가 왜 부끄러운가요?' '아무리 겉으로 보기엔 놀고 먹으며 사는 사람 같아도 실제론 모두가 굉장히 치열하게 살아요. 이 세상엔 하찮은 인생이란 있을 수 없어요. 저도 어릴 때부터 항상 베짱이란 소리를 듣고 살았지만 저 또한 나름대로는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어요!'
치열한 경쟁을 뚫고 교미를 해 전쟁 병기로 태어난 검정메뚜기를 아는가. 자연적으로 태어날 수 없는 이 검정메뚜기는 '무엇이든 갉아먹는 난폭함' 덕에 전쟁시 상대방의 식량을 없애는 무기로 쓰였다고 한다. 박씨는 '현대인'을 '검정메뚜기'로 비유하며 날로 경쟁이 치열해 지는 현실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 장담했다. '한국 사회엔 실제로 자기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이미 각자에게 주어진 태생을 사는 것이죠. 빈부의 격차도 크고 거의 자본주의의 최고조에 다다른 느낌이에요. 일종의 육두품이라고 할 수 있죠. 이미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못 올라 갈 거라는 걸 알기에 로또에 목을 메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가 말하는 현실과 소설 속은 상이했다. 소설 속에선 '필요 이상으로 빠른 공을 던지고 필요 이상으로 무리를 하며 무지막지한 경쟁'에 시달리는 프로야구가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 야구'에게 완패(?)를 당한다. '무지개'를 그린 결말에 대해 박씨 또한 고민이 많았다고 하는데. '처음엔 리얼리티를 살려 비극으로 끝내려 했어요. 그게 솔직한 우리 현실이잖아요. 만약에 그랬더라면 소위 평론가들이나 다른 문학가들에게 문학성에 대해 좋은 평을 들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전 그분들이 읽는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아요. 실제로 실직자 친구들에게 현실적인 결말을 보여주니 너무 고통스러워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을 주고 싶어 결말을 무지개로 바꿨죠. 하지만 현실에 없는 무지개를 조장하는데 일조 한 건 아닌지 솔직히 고민이 되요. 이 부분은 앞으로 제가 글을 쓰면서 계속 풀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해요.' '이미 답은 모두가 알고 있다' 기발함의 찬사와 동시에 어떤 이들은 더러 그의 문학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문단의 반응에 박씨는 '그래서요?'라며 한 마디로 반문했다. 어린 시절부터 칭찬이란 걸 받아 본적이 없다는 그는 여전히 칭찬 받기에 관심이 없다며 메탈리카와 사이먼&가펑클의 비유를 들었다. '헤비메탈을 하는 메탈리카가 포크 음악을 하는 사이먼&가펑클에게 '너 왜 메탈을 하지 않고 포크 음악을 하니?'라고 묻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전 소설을 쓰기 위해 정규 교육이나 훈련을 받아 본 적이 없고 그런 곳엔 관심도 없어요. 솔직히 다른 문학가들에게 욕을 먹더라도 상관없어요. 전 그들이 읽는 글을 쓰는 게 아니에요.
'서른이 넘은 사람의 말은 절대 안 믿었다'고 말하는 그가 어느 덧 서른 중반의 아버지가 됐다. 내신 15등급 가운데 15등급에 머물며 꼴찌를 해 같은 반 축구 선수에게 고맙다는 말까지 들었다는 고등학교 시절. 박씨는 그 시기를 '머리에 피가 마르지 않아 도무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고 회상한다. 막연히 예술가를 꿈꾸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와 어울렸던 선배들이 '사회'에 나가 사는 모습을 보며 박씨는 점점 두려워 지기 시작했다. 방황하는 선배의 모습이 결국 자신의 미래라고 깨달은 그는 '커닝'을 해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에 들어간다. 예술가는 되고 싶은데 막상 살펴보니 대부분의 과들이 오랜 실기와 과외를 필요로 했다. 그 중 유일하게 비싼 실기가 필요 없는 과가 문예창작과였던게 그의 선택의 변. '대학가서도 소설은 써 본적도 없고 수업을 들어 본 적도 없어요. 워낙 음악을 좋아하고 또 과제 분량이 가장 적어 시를 전공으로 택했죠. 데모를 안 했던 대학교 때는 부정 입학자 명단에 오르기도 했어요. 실질적인 당사자가 아닐 바엔 전경들과 싸우는 데모가 회의적이었죠. 그 당시 운동했던 학생들을 보면 또 다시 그들이 똑같은 국회의원이 돼 있고…. 전 학교 밖에서 세상을 좀 일찍 배워 사람을 그리 쉽게 믿지 않는 편이에요. 근데 참 이상한 게 저에게 배경이 있다는 소문이 돌자 여학생들이 절 대하는 태도라 달라지더라구요. 그때 또 한번 놀라며 세상이 참 무섭다는 생각을 했어요. 학교도 잘 안 다니고 가끔 교수님들 대신 민방위 훈련받아 학점 얻으며 그렇게 대학 시절을 보냈어요.' 졸업 할 무렵 퇴직금을 탄 아버지가 사기를 당한다. 유일한 아들이었던 박씨는 사기 당한 일의 뒤처리를 하며 일년을 보냈다. 그 후 그가 첫 사회 생활을 시작한 곳은 오로지 '패기'와 '용기'만을 보는 영업직이었다. 무리한 접대 업무로 간이 나빠진 그는 광고 회사로 직장을 옮기고 다음엔 모 잡지의 사진 기자로 취업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타이슨과 홀리필드의 경기를 보는 순간 불현듯 그는 '콱 깨물어 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갑자기 무언가를 막 쓰고 싶었어요. 안 쓰면 병이 날 것만 같았죠. 그 당시 현실적으로 아이도 생기고 많이 힘들었는데 의외로 아내가 흔쾌히 허락을 했어요. 하지만 제가 무작정 사표까지 쓸 줄은 몰랐을 거예요. 그 후 아내가 혼자서 3년간 생활비를 벌었죠. 제 인생은 항상 모든 게 다 실패였지만 유일한 성공은 바로 아내를 만나 결혼한 것이죠!'
학력과 배경 없이 오로지 실력으로만 판가름 나는 격투기를 보며 쾌감을 느낀다고 말하는 그의 눈에 순간 생기가 번뜩인다. 박씨는 격투기 관람이 어느 새 사느라 말라 버린 머리의 피를 다시 돌게 해 에너지를 얻게 한다며 유쾌해한다. '이미 답은 다 나와 있어요! 누구나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지는 이미 다들 속으론 알고 있죠. 제가 신이 아니기에 욕심이나 경쟁을 버리라는 말은 못해요. 하지만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만큼 모두들 경쟁적으로 제각기 따로 잘 살려고만 해요. 물론 잘 살려는 욕심이 잘못 된 건 아니죠. 하지만 과연 필요 이상의 욕심, 어이없는 욕심을 부리며 살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는 '인생은 삼천포에 있다'는 말이 결코 어려운 게 아니라며 '천국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라는 식의 '흔하고 쉬운 표어'일 뿐이라 전한다. 단지 이미 답을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사람들이 문제일 뿐이라는 따끔한 비판과 함께. /김은성/김진석 기자 (frame4@daum.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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