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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 그리스 문명의 기원이 아프리카?

The taste of others

by liaison 2006. 2. 1.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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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문명의 기원이 아프리카? 블랙 아테나(제1권)
마틴 버낼 지음|오흥식 옮김|소나무|880쪽|3만원


1993년, 필자가 성서학 박사과정을 위해 미국 코넬 대학교 근동학과에 입학 했을 때, 특이한 이력의 한 교수를 만날 수 있었다. 그 교수는 정치학과에서 중국 현대사를 강의하면서, 근동학과에서 협력교수로 그리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의 고대사를 넘다들면서 강의하고 있었다. 이 괴짜 교수의 강의는 매우 열정적이었으며, 고대에서 현대까지의 역사에 대한 해박함은 막힘이 없었다. 성격은 소탈하여 거리낌이 없었으며, 개인적으로 만나면 무척 인정이 많은 동네 할아버지를 대하는 듯 하였다. 그의 이름은 마틴 버낼 (Martin Bernal)이었다.

공산주의 사상가였던 아버지 존 버낼과 유명한 이집트 학자였던 알랜 가디너의 딸이자 작가인 마가렛 가디너를 어머니로 둔 유대인으로, 젊었을 때 마오쩌뚱에 심취하여 캠브리지 대학에서 중국 현대사를 전공한 학자였다. 1972년 미국 코넬 대학교 정치학과에 교수로 온 이후, 그는 문화혁명 및 베트남 전쟁을 거치면서, 자신의 학문적 신념에 회의를 느끼면서 중년의 위기에 빠진다. 자신의 정체성 문제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자신의 주 전공인 중국 현대사를 포기하고, 1970년대 중반이후 자신의 혈통적 뿌리인 고대 근동의 역사 연구에 몰두하게 된다. 그 후 1988년 고대 서구 문명의 요람으로 알려진 그리스 문명의 기원에 대한 책인 ‘블랙 아테나: 고전문명의 아프리카 및 아시아적 뿌리들’을 내보임으로써 소위 말하는 ‘블랙 아테나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이 책의 내용은 방대하지만,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 책의 제목이 시사하듯이, 아테나로 상징되는 그리스 문명의 기원은 아프리카 및 페니키아라는 것이다. 그것도 현재의 이집트 사람이 아니라, 검은 피부의 아프리카인이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그리스 문명의 기원을 인도 유럽, 즉 아나톨리아 혹은 자생적으로 보는 기존의 주장을 뒤집는 것이다. 물론 그리스 문명의 아프리카 기원설을 그가 처음 주장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19, 20세기의 유럽 중심주의에 사로잡힌 서구 사학자들이 어떻게 고대의 사료들을 왜곡시켜 역사적 사실을 조작했는가를 구체적이며 객관적 증거로 체계화시킨 주장이라는 점에서 그 파괴력을 지닌다. 하지만 전통적인 고전학자 및 서양 사학자들이 반론을 펴면서 1990년대 이후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으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 책의 영향력은 성서 이후 지중해의 동편 지역의 문제를 다룬 가장 논쟁적인 책이라는 평가에서 잘 알 수 있으며, 학회와 인터넷 (www.worldagesarchive.com)등을 통해서 여전히 뜨거운 토론이 진행 중이다.


이 책은 4부작을 목표로 하고 있다. 1권은 1785-1985년까지 서구의 학자들이 그리스 문명의 기원을 어떻게 조작했는지를 다루며 이 시리즈의 모체가 되는 주장을 포함한다. 2권은 고고학 및 문헌상의 증거를 다룬다. 3권은 2006년에 출판 예정으로 언어학적 증거를 다루며, 4권은 신화적 증거를 다룰 예정이다. 1권을 기존의 이론을 뒤엎는 폭탄선언이라고 본다면, 2, 3, 4권은 그 선언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다.

헤로도투스를 비롯한 고대의 역사가들의 증언에 의하면 고대 그리스 문명(기원전 2100~1100)은 이집트, 페니키아 등의 영향을 받아 세워졌다고 알려져 왔다. 그것은 아무도 의심할 수 없는 상식이었다. 하지만 18세기 이후 독일을 중심으로 발생한 유럽 중심의 민족주의, 인종 우월주의는 감성과 예술성의 완성이라는 그리스적 이상의 원류를 미개하다고 여긴 이집트와 페니키아를 중심으로 한 오리엔트의 영향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고대 그리스 문명에서 아프리카와 셈족의 영향을 인정하는 것은 수치이자 비과학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유럽 중심주의자들은 북쪽에서 그 기원을 찾아 동일한 혈통인 아리안 족을 고대 그리스 문명의 뿌리로 서술하는 조작을 감행하였다. 즉 그것은 이집트의 역할을 죽이고 그 자리에 인도, 즉 아리안을 가져다 놓는 바꿔치기였다. 아리안 모델은 지금까지 학교 교육을 통하여 별다른 여과장치 없이 정설로 받아들여져 왔다. 이에 대하여 버낼은 아리안 모델이 폐기처분한 사료들과 신화들에 근거하여, 객관적, 과학적, 종합적인 방법으로, 아리안 모델은 유럽 중심적 인종 우월주의와 제국주의적 식민지화를 정당화하기 위한 조작의 산물이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동시에 버낼은 역사의 해석에 담긴 이데올로기적 편견을 걷어내고, 객관적 사실을 재구성하여 오류를 수정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아리안 모델에 대한 정반대의 극단적 태도를 견지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또다른 인종주의 논쟁을 불러올 뿐이다. 그가 주장하는 수정된 고대 모델은 고대 모델과 넓은 의미의 아리안 모델이 제기하는 객관적 증거들과의 대화를 통해 나온 것이다.

결론적으로 고대 그리스 문명은 기원전 1730년경 이집트의 통치하에 있던 힉소스가 추방되면서 에게해를 침략하면서 이루어졌다. 따라서 그 문명의 뿌리는 이집트 및 페니키아이며, 이후에 아나톨리아 등의 아리안 요소들이 혼합된 문명이라는 주장이다.

버낼은 ‘블랙 아테나’ 역시 정치적 의도가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그것은 아리안 모델이 유럽중심의 문화적 인종적 우월주의를 만들어내기 위한 조작이었다면, 수정된 고대 모델은 유럽 중심의 문화가 지닌 문화적 우월주의, 인종적 편견 등을 걷어내고자 함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란 닫혀있는 완료형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의 의식과 삶에 살아 움직이는 진행형임을 이 책은 잘 보여준다. ***


유윤종 평택대 교수·성서학
입력 : 2006.01.20 18:15 24' / 수정 : 2006.01.21 00:06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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