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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The taste of others

by liaison 2006. 11. 28.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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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난 혼자 논다, 나혼자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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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홍익대 앞 호젓한 주택가에 위치한 현대적인 분위기의 카페. 벽에는 아마추어 작가가 찍은 풍경 사진이 걸려 있고, 어렵지 않은 재즈 음악이 들릴 듯 말 듯 흘러나온다.

흥미로운 풍경 하나. 여기에 온 손님 중 절반은 동행자가 없다. 가끔 종업원에게 커피 리필을 부탁하거나 재떨이를 비워달라고 주문할 뿐, 누구에게도 말을 건네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이 가져온 책을 조용히 넘기거나, 노트북에 코를 박고 무언가 뚫어지게 보고 있다. 노트북에 이어폰을 꼽고 영화를 보거나, 인터넷에 접속해 서핑을 하기도 한다.

[커버스토리]난 혼자 논다, 나혼자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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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홍익대 앞 호젓한 주택가에 위치한 현대적인 분위기의 카페. 벽에는 아마추어 작가가 찍은 풍경 사진이 걸려 있고, 어렵지 않은 재즈 음악이 들릴 듯 말 듯 흘러나온다.

흥미로운 풍경 하나. 여기에 온 손님 중 절반은 동행자가 없다. 가끔 종업원에게 커피 리필을 부탁하거나 재떨이를 비워달라고 주문할 뿐, 누구에게도 말을 건네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이 가져온 책을 조용히 넘기거나, 노트북에 코를 박고 무언가 뚫어지게 보고 있다. 노트북에 이어폰을 꼽고 영화를 보거나, 인터넷에 접속해 서핑을 하기도 한다. <!-- 사진 Star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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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노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나홀로족’이라는 말도 있고 ‘코쿤족’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이들 ‘…족’이란 말에는 어딘가 부정적인 뉘앙스가 배어 있다.

오해해서는 안된다. 이들은 독신주의자도 아니고, 일본에서 사회문제가 된 ‘히키코모리’ 즉 은둔형 외톨이도 아니다. 혼자 논다고 해서 타인과의 소통을 일절 거부하거나, 세상에 대한 적개심으로 뭉쳐 있다고 보진 말라. 이들은 그저 자신의 취향을 마음껏 누리고픈 평화주의자일 뿐이다.

직장인 이모씨(26)는 2주 전 인사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장 미셀 바스키아전에 홀로 다녀왔다. 지난 주말에는 종로 스폰지하우스에서 상영한 일본 영화 ‘좋아해’를 혼자 관람했다. 이씨는 “동행은 옵션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마음 맞는 친구와 함께 다녀오면 좋겠지만, 스케줄도 맞지 않는데 굳이 무리해서 시간을 맞출 필요는 없다”며 “친구와 함께 할 수 없다고 짧은 주말을 집에서 헛되게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지난 19일 방영된 KBS2 ‘개그콘서트’의 ‘봉숭아 학당’에는 혼자 노는 전학생 ‘노심심’이 처음 등장했다. 노심심은 책상 서랍에 감춰둔 군만두 형제들과 함께 노는가 하면, 시간을 소리내 알려주는 휴대폰과 대화를 하기도 한다. 책상, 걸상 모두 노심심의 친구다. 코미디 프로그램의 특성상 노심심은 살짝 ‘맛이 간’ 상태로 나와 웃음을 주기는 하지만,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게 자연스러운 요즘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예전에 사람들은 혼자 놀지 않았다. 어른들은 셋만 모이면 화투패를 돌렸고, 젊은 남성들은 당구장에 몰려가곤 했다. 혼자 영화를 보러 간다거나, 혼자 카페에 가는 건 너무나 어색했다. 혼자 카페에 온 손님에게 종업원은 “일행 오시면 시키실거죠?”라는 말을 던지고 가버리곤 했다.

왜 사람들은 혼자 놀기 시작했고, 어떻게 가능했을까. 일단 여럿이 함께 놀 수 없을 만큼 현대인의 기호와 취미가 다양해졌다는 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과거 입사지원서나 자기소개서의 ‘취미’란에는 기껏해야 음악 감상, 운동, 독서, 영화 감상 등으로 요약될 만한 선택지를 적어넣었다. 요즘 취미를 이렇게 적었다가는 “무성의하다”는 소리를 듣기 딱 좋다. 이제 젊은이들의 취미는 ‘건프라(건담 프라모델) 만들기’ ‘50년대 이전 고전영화 DVD 수집하기’ ‘고양이 그림이 들어간 장식품 수집하기’로 다양하게 분화된다. 이런 취미를 가진 사람을 주변에서 찾기는 쉽지 않다.

취미 분화가 내용이라면 매체 발달은 이를 가능케 하는 외적 조건이다. 텔레비전이 동네에 단 한 대 있던 시절엔 동네 사람들이 함께 모여 김일의 박치기를 응원했다. 텔레비전이 가정에 한 대 있던 시절엔 가족이 과일을 함께 먹으며 드라마를 봤다. 텔레비전이 가정에 여러 대 있거나 방마다 개인용 컴퓨터가 놓인 시절이 되자 사람들은 더 이상 모일 필요가 없어졌다. 아버지는 마루에서 뉴스를, 어머니는 안방에서 드라마를, 아이는 자기 방에서 인터넷에 몰두하는 현상이 자연스럽다. 네트의 광대한 세계에선 자신과 비슷한 취미를 가진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들은 스스로 고립을 택하지 않았다. 물리적으론 혼자 놀고 있지만, 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실로 누군가와 연결돼 있다. 카페에 혼자 앉은 사람도 실은 무선 인터넷을 연결해 메신저 창을 열고 누군가와 끊임없이 대화 중이다. 휴대전화 가입자 수 4천만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휴대폰을 가진 이상 혼자지만 혼자가 아니다. 남들과 부대끼긴 싫지만, ‘왕따’는 더 싫다.

시인 정현종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알 듯 모를 듯한 시를 썼고, 록그룹 본 조비는 ‘사람은 섬이 아니다’라고 노래했다. ‘아름다운 개인주의자’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사람을 섬에 비유하는 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거대 대륙 팡게아는 이미 갈라졌고, 섬은 고유의 생태계를 유지한다. 그러나 이 수많은 섬 사이엔 끊어지지 않는 다리가 놓여 있다.

〈글 백승찬·사진 권호욱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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