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비 내린다
땅을 적시지 않고 …
내 발을 놓아 주지않고…
신호등, 초록빛,
헐떡이며 바뀌면
그제서야
가야 할 길을 눈치채는 흐트러짐
한기가, 바짝 올린 코트 깃을
유린하며
빗방울과 함께 등줄기를
섬뜩 타고 내리면
늘 등에 지고있던 무거운 추억이
놀라 머리칼을 잡아 당긴다
꺾이는 목
새큰한 가슴
길의 지나온 끝은 되새길수록 희미하고,
내 모습은 그 길 섶에서 초라하고,
굵어진 빗 방울 소리도 땅을 적시진
않는다
작은 소녀가 물 웅덩이에
귀여운 발을 놀리며 집어 넣는다
커다란 물고기가 튀어 오를 듯
한 점이 세상 같다
후미진 골목의 눈이 의식을 누르고
고개 들어 하늘을 보니 은빛 창살처럼
꽃혀 내리는 빗줄기
한 점, 내게로만 떨어지는 힘겨운 추락
겨울 비 내리는 거리엔 시간이 서성이다
노을 없는 밤을 맞는다
겨울 비 내리는 거리엔 19년전 흘렀던 노래가
다시 크게 흐른다
겨울 비 내리는 거리엔 내가 서있다
겨울 비 내린다.
겨울 비…
-겨울 비 내리던 어느 밤 일기장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