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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

Monologue

by liaison 2005. 3. 18.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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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땀과 함께 잠자리에서 깨어 났다.

뒤척이다가..

습관처럼 무거운 첼로나 덜 날카로운 바이올린 곡을
플레이어에 얹고 새벽을 날 준비를 또 해 본다

깨어날 때는 아직 나의 사적인 시간이 있음을 기뻐하지만
한꺼번에 몰려드는 어제까지의 찌꺼기들은
이내 잠자리의 평화를 몰고 가버린다.

술을 마시고 쓰러져 자면 잠으로 유도 해야하는
고통스런 시간이 차라리 달아서 좋았는데...

방안 정리를 단아하게 하고
향을 피워 놓고
더 이상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창 밖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창 밖에는 늘 켜져 있는 네온과 그리고 가로등과
얼굴 모르는 이웃의 방에서 흘러 나오는 희미한 빛
조금 쌀쌀한 듯한 새벽 공기와
무겁게 다가서서 와 있는 듯한
괴물같은 아파트군들...

혹시 비라도 내리는 건가?
어제 아침의 기분좋은 습기가 상상 속으로
얼굴에 다가선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치열했던 전장의 병사처럼
앞에 앉아있던 사람에게 떠들어 댔지. 말도 안돼는 이야기,
잘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  거짓 정보들,  구태,  껍질뿐인
고백,  입냄새 나는 외침들..
소리 이상의 아무 의미가 없는 공명들...
 
취기는 용기를 주고 만용과 소란과 자만과 편견을
모두 용서해 주고 흐리게 해 주어 서로 이렇게 까지 떠들어 볼 수
있다고 악을 악을 써댔다...

세상 사는 방법도 참 여러가지다 ... 지하철 삼성역엔
사람이 그렇게나 넘쳐날 수 없었다. 

어제 일어난 일이다.

절대 오래 기억하지 못할 일 같다.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미울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구에겐가 물어 보고 싶다.
깨어 있을 때가 가장 힘들어...

몸이 술을 원한다.

볕을 받는 얼굴과 뒤에 그려진
그림자의 색이 너무도 다른 나.
나를 보고 소리 친다...

너는 술이나 퍼 마셔!
그래서 골아 떨어져!

어렸을 적 아버지의 술 주정은 내겐 공포 였지만
차라리 그 분의 그 처진 어깨가
이젠 내게 익숙하고 다행이다.
너무나 당당하셨다면, 그리고 강하셨다면
난 지금에 와서
너무 힘겨울 것 같다.

아버지가 맞은 세상은 이제 접어지고 있지만
난 아직 수십년 더 가야하는데
그렇게 자신있고 당당하면

너무 내가 비참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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