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수유리의 아버님께 다녀왔다 분당에서 딱히 산이라곤 가본적이 별로 없기에 말씀 끝나고는 혼자 산책삼아 북한산쪽을 다녀왔다 4.19 탑을 지나 산녘으로 걸어들어가니 공기가 훨씬 차가와 지며 산내음이 나기 시작했다. 참 좋은 느낌이었다. 해가 조금씩 기울어 지는 시간이었는데 인수봉과 그 주변의 바위들이 멋진 조화를 보여주었다 카메라를 안들고 오다니... 하지만 한편으로는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어 장면을 담을 때 항상 느꼈던 기록에 관련된 생각을 다시 하며 위안을 했다. 정말 오래 기억에 남을 장면은 사진을 찍어 놓은 장면이 아닌 카메라가 없음을 몇 번이고 아쉬워하며 뇌릿속 깊이 눈도장을 반복하여 찍은 그 장면들일 것이다 라고.... 이제까지 카메라에 잡은 어떤 영상도 내 마음의 눈으로 바라본 그 장면을 그대로 드러내준 적은 없었다. 카메라의 기계적인 구조나 인공의 눈이 내어 주는 색과 제한된 구도는 당시의 장면의 전체감과 느낌과 향기를 전부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니까... 과장과 유린이였던 일도 많았으니까... 이런 생각을 하며 산을 조금 들어섰는데 소름이 돋았다. 어느새 많이도 변했구나 나뭇잎의 색들이.. 하는 말만을 되뇌었다. 가을이 깊어간다. 단순히 가을에 관한 감성을 이야기 하기 이전에 세월은 너무도 빠르게 한 해 한 해 곁을 스쳐지나간다. 영화 빠삐용의 대사중 세월을 소모한 유죄의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뼈에 사무칠까 싶었다 세월을 소모했다기 보다는 어느새 이자리에 서서 산을 바라보는 내 모습이 더 이상 '산이 아름답다'. '가을이 스산하다'를 논하는 모습이 아닌데 마음에 깊은 동요가 있었다. 이렇게 나이들어 가다보면 얼마나 서러울까... 발버둥쳐도 하루하루가 모여 꼬박 꼬박 한 해 한 해가 내 곁을 지나가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 번 가 뵐 때마다 참으로 쉬이도 늙어가신다. 그 곁에 함께 나이 먹어가는 내가 있음을 왜 그리 오랫동안 깊이 생각 한 번 해보지 못했는가? 올 해는 내게 참으로 기억에 오랫동안 남을 한 해인것같다. 1980년의 돌발적인 일, 1984년 오랜친구와의 헤어짐 , 1990년 일본으로 간 일 1992년의 새로운 삶 ,1997년 미국행을 결심한 일, 2000년 10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일, 내 삶을 굵직 굵직하게 방향 지워주었던 한 해 한 해와 함께 다시 이 2003년은 몹시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듯하다 좋은 기억도 그리고 뼈 아픈 기억도 많이 있다. 어젠 뜬금없이 아웃렛에 가서 인센스와 허브를 사들고 집에 왔다 참 심각하게 한참을 골라 향이 좀 강한 Incense stick과 자그마한 투명한 사각 글라스에 곱게 심어놓은 이름도 모를 허브 한 가닥을 사다가 책상에 세워 놓았다. 요즈음 몇 일 마음이 참으로 차분해 진다... 다행이다.
다시 일을 생각해 본다. 어려서 부터, 남자가 무언가 목표를 향해 무섭게 집중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는데, 내 감정은 그런 일 보다는 좀 다른 코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서 지금도 내 역할이 다소 무겁다. 무엇을 위해 일 하는가에 대해 생각이 정리된 것이 최근이기에 일을 하는 내 모습에 거부감은 전혀 없지만 이젠 부담감이 많이 느껴온다 아직 경험과 경륜이 부족하여 전체적으로 조율이 잘 되어 가고 있는지 의문이 많이 든다. 후배들의 노력에 편승하는 관리자가 되어서는 안될텐데 말이다... 하고 싶은 일과 하는 일, 하는 일과 좋아 하는 역할의 큰 명제가 이젠 정리 되어야 할 때 인것 같다 좋은 기업 문화와 공통 분모에 충실한 전 직원의 애정어린 회사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 이리도 어려운 것을, 그 분은 참 대단 하셨던것 같다. 더욱 외롭고 고통스럽게 결론에 다다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셨던 그 이야기들이 이제야 조금씩 알 것 같으니 난 얼마나 우매한 인물인가...
오늘 하루, 많은 생각들이 교차된 날 이었다. 산에서 본 사진같은 단 한 장면이 내 무모한 세월에의 돌진을 경박하게 느끼게 했고, 아버지의 모습이 내 인생에 대한 타임 테이블을 다시 들여다 보게 했으며 긴 시간의 운전이 이런 생각들을 꽤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게 시간적 여유와 마음의 여유를 주었다. 길을 나서면,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이 달라지며 생각도 좀 더 유연해 짐을 다시 한번 깨달은 하루 였다. 사진을 좋아 하며 느껴 온 가장 큰 느낌. 사물을 보는 내 시각이 변화가 느껴진 그런 하루 였다. 2003년 가을중의 하루가 그렇게 밤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