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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 십팔일 새벽.

Monologue

by liaison 2003. 8. 1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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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삼년 팔월 십팔일 새벽

어느덧 열어둔 창들의 맞바람이
내 체온을 많이 빼앗고 있다는
시린 느낌이 드는 밤이다
여름이 그렇게 뜨거운 입김으로
가슴과 걸음을 혼미하게 하더니
더없이 초라한 모습으로 밤의 한 귀퉁이를
가을에게 내어 주려 한다

무엇엔가 쫒기듯 집안을 정리하고
오랫만에 깨끗이 비워진 책상위엔
가지런한 열 손가락이 더없이 한적하다
매 해 가을이 다가오는 시기에,
혹은 가을까지 끝나가서 예정에 없던
잔 눈이 뿌려지던 때에
치매 증세 처럼 다가오던 무기력함과
우울함이 또 손님처럼 당당히 가슴안에
자리하고 말았다

아침에 또 엄습할 두통과 담배로 인한
가슴 뻐근함이 미리부터 기승인데
혼자 타다가 끝에 다다러서 꺼진 담배가
내 사는 모양인양 저리도 친숙할까?
기억의 지배를 받고 사는 모습에 이젠
신물이 날 때도 되었을 텐데
겨잣빛 소파에 매일을 누워도 등뒤엔 과거를
깔고 눈을 감는다

악몽처럼 하루는 그리도 긴 시간을
나를 짖누르다가 송글이 맺힌 땀방울에
비를 기원하며 환청을 앓는다
땅을 때리며 앞이 안보일 비가
창으로부터 가슴까지 두들기듯 내려 준다면
시원하고 춥고 그리고 강하게 나를
깨워 준다면
서러운 밤은 좀 짧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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