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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Monologue

by liaison 2003. 6. 16.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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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다시 밤이 돌아와 어렵사리 평화를 얻었다
어둠은 고맙게도 많은 것을 감추어 준다
그리고 나를 지켜봐 준다

보여서 혼란했던 모든일이
흙탕물이 가라앉듯
나를 침착하게 한다

홀로 곧게 오르는 담배 연기가
길게 재를 남기며
걸어왔던 긴 길은 저만치,
끝이 흐리고 안개덮힌, 정말
너무도 지루한 길이였던 것 같다.

나로인해 상처를 얻은 사람들은
지금 나보다 훨씬 힘겨운 눈물을
흘릴텐데,

난,

오늘도 긴 낮잠을 자고 말았다

그렇게 현실을 배신하는 것이
얼마나 미련한 짓인지
이젠 알 때도 되었는데.

눈앞엔 영화의 한 장면과
어떤 익숙한 음악이 함께 떠오른다

바다로 길고 아름답게 뻗어 간
골레타의 피어(Pier)와
난간에 앉아 떨어진 낚시 밥이라도 채가려
부지런한 눈치를 보는 덩치 큰 갈매기

형용할 수 없는 노을의 혼란함이
날 그곳에 네 시간이나 세워 두었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묻게했던 그 곳은
이젠 내 뇌 속 깊은 곳에 소중히 묻어 놓았다.

다 없어져도 좋다
다 가져가도 좋다

내 모든 것을 송두리째 훔쳐가도 좋다

내가 가두어 놓은 나와 소중한 몇 편의 기억만이
어짜피 나를 살아 가도록 지탱해 주니까
희망이나 꿈이라고 표현하는 몇 가지 안되는
일들 중 아직 나를 지켜 주는 밤이 있으니까

또 돌이켜 생각하는 이 습관이 내 일상을 지켜주니까

어느 지인이 이야기 했던 소모적인 추억에의 집착을  
아직도 즐기는 못난 인생이 이렇게 짐승처럼 웅크리고 앉아
오늘도 깊은 시간을 지키고 있으니까
아니, 또 잔인하게 조각 조각 베어 내고 있으니까

나를 지켜 주는 밤을 사랑한다

그리고 나는 이 밤에 또 난도질 당한다

밤이 끝나서 아침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밤을 끌어내려 아침이 지나쳐 가는 것 뿐이니까

6월 15일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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